250x250
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관리 메뉴

탁월함은 어떻게 나오는가?

[서평] 화폐전쟁 1 < 저자 쑹훙빙|역자 차혜정 > 본문

[Snow-ball] 책/독서 서평

[서평] 화폐전쟁 1 < 저자 쑹훙빙|역자 차혜정 >

Snow-ball 2020. 7. 12. 16:28
반응형

화폐란?

우리는 일상적으로 화폐를 사용한다. 내가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1,000원 5,000원 짜리 화폐들이 생긴이유는 무엇일까? 화폐의 개념은 물물교환의 시대로 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물물교환의 시대에서는 사람은 자신이 생산하는 상품과 원하는 상품을 바꾸는 불편한 물물교환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상대방에 원하지않는다면 거래가 일어나기 매우 불편한 상황이 지속됬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라도 믿을 수 있는 화폐를 구성하였고 소유와 거래가 편해지면서 사람들의 삶에는 더 이상 없으면 안될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 화폐는 이제 대한민국안에서는 원. 중국은 위안화, 영국은 파운드, 일본은 엔, 미국의 달러 등 각 나라에 화폐는 생겨나게 됬다. (물론 지금은 유럽권에서 통합해서 사용하는 유로화는 특수한 경우다.) 하지만, 전세계 어디를 가도 수요가 넘치는 화폐가 있다. 그것은 전세계가 미치도록 소유하길 원하는 미국의 달러이다. 

 

그렇기에 이 책 화폐전쟁은 로스차일드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달러의 기축통화 자리까지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을 역사적 사실과 음모른을 섞어서 만든 화폐책이다. 거기에 더해 기축통화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로이스차일드가와 금융재벌들의 시도와 노력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열심히 일한자들의 부를 자신들에게 이전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적혀있다. (물론 음모론이 아니고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없는 사실이든 권력에 의한 억압으로 인한 상황이라도 자료가 없는 사실을 팩트라고 주장하면 혼란을 준다고 생각한다.)

 

화폐전쟁

우리는 그러면 단순한 금액이 적혀있는 종이조각에 불과한 화폐를 차지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로스차일드가문이 선택한 민영은행의 방식에 답이 있다. 

 

"1625년 이후 두차례에 걸친 내전과 정국의 혼란으로 영국의 국고는 바닥이 난 상태였다. 1689년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와 결혼한 윌리엄 1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가장 심각했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전쟁까지 치르느라 윌리엄 1세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때 윌리엄 패터슨을 비롯한 은행가들은 네덜란드에서 배워온 새로운 개념을 소개했다. 즉 민영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을 설립해 국왕의 방대한 지출을 위한 융자를 시행하자는 것이었다. 이 민영은행이 정부에 제공한 120만 파운드의 현금은 정부의 '영구적 채무'가 되었다. 금리는 연 8%에 4,000파운드의 관리비를 책정했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매년 10만 파운드만 내고 그 자리에서 120만 파운드의 현금을 쓸 수 있었으며, 원금을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었다. 정부는 물론 더 많은 '특혜'를 제공해서 잉글랜드은행이 국가가 승인한 은행권을 독자적으로 발행할 수 있게 됬다. < 중략 > 1694년에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은행에 왕실 특별허가증을 내주었고, 최초의 현대적 은행은 이렇게 탄생했다. 잉글랜드은행의 핵심은 국왕과 왕실 가족의 개인채무를 국가의 영구적 채무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전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잉글랜드은행이 채무에 기반을 둔 국가화폐를 발행했다. 이렇게 해서 국왕은 전쟁에 필요한 돈을 확보했으며, 정부도 뜻대로 정책을 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은행가들은 그동안 꿈꿩던 거액의 대출을 해주고 짭짭할 이자 수입을 챙기게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었다. 다만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했다는 점이 옥에 티였다. 이렇게 강력한 새로운 금융 수단이 생기면서 영국 정부의 적자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 중략 >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도는 국가화폐의 발행과 영구적 국채를 묶어 놓는 구조였다. 그래서 화폐를 신규 발행하면 국채가 늘어나게 되어 있었다. 국채를 상환하면 국가의 화폐를 폐기하는 셈이 되므로 시중에 유통할 화폐가 없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영원히 채무를 상환할 수 없다. 이자를 갚고 경제도 발전시켜야 하므로 화폐 수요는 필연적으로 늘어날 테고, 그 돈은 다시 은행에서 빌려와야 했기 때문에 국채는 계속해서 불어날 수 밖에 없다. < 중략 > 2005년말 현재, 영국 정부의 채무는 1694년 120만 파운드에서 5,259억 파운드로 늘어나 영국 GDP의 42.8%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로스차일드 가문과 금융재벌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나라의 강력한 동력이 부채가 되고 그 부채는 꾸준하게 증가하게 되는 것. 그리고 하나의 나라가 더 이상 채무를 갚을 수 없다는건 그안의 소속원들은 이미 끝에 가까운것이다. 그렇다는건 하나의 나라가 망할 확률은 극히 적다. 그리고 이런 채무들을 한 국가를 벗어나 전세계적으로 줄 수 있다면??? 상상이상으로 적은 리스크로 상상이상의 이자수입을 가져올 수 있게 된다. 그들 금융가들은 선과악을 떠나 철저하게 이윤이 있는곳으로 움직이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밌게도 이러한 점점 급속도로 늘어나는 부채의 늪에서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예를 얻었었다. 

책 -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의 일부분을 인용해보겠다.

"19세기 초 유럽 대륙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은 영국이었다. < 중략 > 반도전쟁에서 가장 존재감이 돋보인 것은 단연 영국 해군이었다. 이들은 영국에서 포르투갈까지 해상 보급선을 유지하고, 군량과 화약 같은 필수 군수물자 공급에서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프랑스군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이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완벽하게 쳐부숴 제해권을 장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영국은 어떻게 불패의 해군을 육성할 수 있었을까? 

 

나폴레옹 1세가 황제에 오른 이후 프랑스는 러시아와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인구도 영국보다 훨씬 많았을뿐더러 해군 육성에 필요한 '경제력'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1인당 소득은 영국에 비해 낮았지만, 워낙 인구가 많아 1780년대 말 국민총샌상은 영국의 2배 이상이었다. 해군력 확충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가 월등히 유리한 조건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재원으로 더 많은 전열함을 만들 수 있었으니 국지적인 전투에서 지더라도 결국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 중략 > 그렇다면 영국은 어떻게 거대한 함대를 건설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와 배리 와인개스트는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에 주목한다. 명예혁명을 기점으로 영국의 국채금리가 급격히 하락해 프랑스 등 적대적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표 1-1 >은 1688년을 전후해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금리 추이를 보여준다. 명예혁명 이전 영국 국채금리는 10%를 훌쩍 넘었다. < 중략 > 그러나 명예혁명 이후 영국 금리는 크게 떨어졌으며, 1980년을 전후해 세계적인 인플레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10% 이상 수준으로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다. "

 

 

결국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책의 내용과 함께 참고한다면, 결국 금융재벌 > 영국 > 영국 국민 > 식민지 > 식민지 국민 들에게 채무는 이전이 된것이다. 이렇게 영국으로 부터 엄청난 권력과 금력으로 탄생하기 시작한 금융재벌들의 링컨 대통령의 피살부터 시작한 미국 대통령과 국제 은행재벌들의 백년전쟁, 미연방준비은행의 탄생, 제1차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 뉴딜정책 등등 역사적 사건들을 해석해주었다.

 

특히나,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국제시장에서 금융재벌들의 공격을 막고 위안화의 강력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금본위제도로 돌아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금본위제도로 돌아간다면 중국은 필히 채무화폐의 지방과 GDP다이어트가 극심하게 일어날 것이고 중국의 왕성한 수출 추세가 중국 위안화의 강세에 따라 차츰 수그러들것 본다. 하지만 금과 은으로 배서하는 중국 위안의 발행량이 많아질수록 중국 위안화는 세계 금융업계에서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금과 은으로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중국 위안화가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고 강한 화폐가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포스트 달러'시대에 세계 각국이 선호하는 기축화폐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문이 든다. 중국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금의 양만큼 금은 존재할까? 그리고 안정적인 화폐가치(물가안정)이 금본위로만 가능할까? 그리고 호황과 불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것이 맞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책 -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 의 일부분을 인용해보겠다.

"금본위로의 복귀 옹호론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려는 소망, 다시 말해 아주 긴 기간에 걸쳐 물가안정을 누리려는 소망입니다. 그런 소망은, 지폐란 원래 인플레이션을 가져오는 경향이 있지만 금본위제도를 채택하면 인플레이션이 없으리라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내가 말한 대로, 그런 주장은 긴 기간 동안을 기준으로 보면 어느 정도 사실과 부합합니다. 그렇지만 기간을 짧게 잡아 연도별 기준으로 보는 경우, 그런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역사를 검토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금본위 옹호론자들이 동 제도로의 복귀를 바라는 또 한가지 이유는 금본위제도가 재량을 제거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금본위제도는, 예를 들어 호황 및 불황에 대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금본위 옹호론자들은 중앙은행에게 그런 신축성을 부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금본위제도의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실용적 이유와 정책적 이유가 둘 다 있습니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국제 금본위제도의 필요를 충족시킬 정도로 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금본위제도에 필요한 만큼 금을 확보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사실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과거 영란은행이 금준비를 거의 보유하지 않았음에도 금본위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영란은행의 첫째, 둘째, 셋째, 그리고 넷째 우선순위가 모두 금본위제도의 유지에 있었다는 사실과 영란은행이 금본위제도의 유지를 제외한 어떤 다른 정책 목표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본위제도의 유지를 위해 전념하겠다는 영란은행의 의지가 충분히 확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일단 생겨나자, 금세 이어진 투기적 공격으로 인해 영란은행은 금본위제도에서 밀려났습니다. 한데, 경제사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운동이 훨씬 더 강화되었고 실업에 대한 우려가 훨씬 더 많아졌다고 주장합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실업을 측정하는 일조차 하지 않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실업과 경기변동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그러므로 요즘 세상에서 금본위제도에 대해 확약한다면, 이는 실업이 얼마나 악화되든 통화정책을 이용하여 그에 대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맹세하는 의미가 될것입니다. 그런데 금본위제도의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점에 대해 만약 투자자들이 1퍼센트라도 의심을 품게 된다면, 이들은 자신의 현금을 제시하고 금을 찾아가려는 유인을 갖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금본위가 가능하더라도 중국의 국민들이 지지를 해줄까? 기축통화를 꿈꾸는 중국으로써는 일리있지만, 상당한 부채를 지니는 중국의 현재상태와 GDP 다이어트로 인한 극심한 불황을 미래를 위해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이책 화폐전쟁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나라별로 있는 각국의 민영 중앙은행들, 기축통화의 위엄과 실제로 존재할지 모르는 금융재벌들의 탐욕들. 그리고 실제로 있을지 모르는 양털깍이에 대한 나의 자산을 보호하는 방법 구상 등등 말이다. 

 

어떻게보면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가 정말 금융재벌들의 손아귀에 있다면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소유한 회사들을 소유하는것이 제일 안전한 것이 아닐까??

 

 

반응형
Comments